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34. 그 수가 차기까지 (계6:9-11)

(도입) 첫 번째 인(봉)부터 네 번째 인(봉)이 해제되는, (세상의) 유혹과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정화의 시기에는, 땅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주목했다. 이에 반해, 다섯 번째 인(봉)을 뗄 때부터는 또 다시 하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묘사한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쳐, 순교한 영혼들이, 하늘의 제단 아래에서, 신원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다.
1.그렇다면, 순교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9b)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희생제물의 피를 모아서 ‘제단 아래에’ 뿌렸던, 구약시대의 속죄제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순교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는 속죄제의 제물이 되는, 속죄일의 제사가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이 속죄 제사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셨다. 그 증표로,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겉옷)를 나눠주셨다. 그런데, 순교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게 된 이유, 즉,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속죄 제사의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근거는 뭘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어 분명한 흔적이 되는 증거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이 되려면, 끊임없이 말씀을 알아가면서 삶의 흔적으로 남겨야 한다. 말씀이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증거가 되어야만 한다. 이 말씀을 증언하면서, 말씀대로 살다가 직면하는 역경과 난관들이 흔적으로 새겨지는 삶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제단 아래에 있는’ 제물의 삶이 된다. 만약, 이러한 흔적이 되는 ‘증거가 없는 삶’이라면,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물이 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기도와 간구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흠향하시는 향기가 될 수 없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몸에 이러한 흔적, 소유주가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낙인(烙印)이 있다고 했다(갈6:17) 예수그리스도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여정에서 받은, 각종 고난과 상처로 인한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이다(고후11:24) 이러한 흔적은 그가 누구의 소유인지를 증명해준다. 오늘날에도 이런 흔적을 가진 이들이 있다. 무슬림권과 종교의 자유가 없는 전제국가나 공산당 치하에서 믿음을 지키려는 이들이다. 오늘날의 우리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대로 살아내려는 믿음의 여정으로 인해, 불이익이나 아픔을 감내한, 삶과 마음의 흔적을 가져야 한다.
2.한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산 사람들의 결국은 어떠할까? 이 땅에서는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영광가운데, 하늘의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이 되어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십사만 사천의 일원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하는 복을 소유하게 된다. 얼핏, 손해보고 잃는 것 같으나, 얻는 것이고 영원히 소유하는 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길은 순교의 삶이어야 한다. 순교를 향하여 한걸음씩 내딛는 삶이어야 한다. (갈2:20) 세례를 받음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새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는 고백이다. 즉, 삶의 방향을 순교로 정했음을 의미한다(고후4:10-11) 하나님의 말씀과 자녀임을 나타내는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적색)순교만이 순교가 아니다.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위해, 무수한 흔적을 남기면서, 자신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백색)순교의 길도 있다. 이 길이 복되고 영광스러운 이유는, 이 길만이 참된 진리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3.그런데,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의 간구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적어도 순교자라면, 누군가를 고발하기보다는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옳지 않을까? 그런데, 고발하고 있다. 왜일까? 그들이 고발한 자는, 땅에 거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는 자이며(11:10). 사탄의 세력인 짐승을 경배하는 자요(13:8,12), 큰 음녀의 음행과 포도주에 취한 자로서(17:2)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다(17:8)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자다. 순교자들의 간구는 자신들을 죽였던 이들에게 당한 원한을 갚아달라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훼방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해주시기를 소원하는 탄원이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속히’,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다. 그런데, ‘속히’ 갚아달라는 순교자들의 간구에 대해, 주님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다 차지 않았기에 ‘잠시 (낙원에서)쉬며 좀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눅23:43, 고후12:4, 계2:7)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크신지를 짐작케 해준다. 우리도 아직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향해, 이러한 긍휼함을 가져야 한다. 또한, 전도와 선교의 개념으로 온 세상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될 세상의 끝을, 본문에 비추어서 적용해보라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우리 개개인이 순교자의 삶을 지향하여 결국에는 순교의 삶이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즉,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통해서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져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다는 뜻이다.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는, 이 땅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하늘 제단아래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이 기도를 지속해야 한다.
4.(맺는 말)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자가 되자.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우리의 말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로 늘 충만하기를 바란다. 또한, 아직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며, 주님의 눈물로 채워졌으면 한다. 입술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찬양의 기쁨이 충만하고, 두 손은 주님을 닮은 섬김으로, 삶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흔적을 남기는, 성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