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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설교요약] 거듭남(요3:1-16) 박성형 목사님
(도입) 주님은 공생애를 통해, 여러 가지 표적을 나타내셨다. 표적을 보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지만(요2:23) 예수님은 그들에게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다. 사람의 겉과 속이 어떠한지를 잘 아셨기 때문이다(요2: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초두를, ‘그런데’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만은 앞서 언급한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암시하기 위함인 듯하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요한은 왜, 니고데모를 두드러지게 언급하려했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밤에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예수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말만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니고데모에 대한 몇 가지 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
1-1.니고데모의 긍정적인 측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하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했다. 바리새인은 그 누구보다 자의식이 강했고, 율법에 대해 정통하다는 자신감과,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한다는 자존심, 이를 통해 백성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이 넘쳐나던 자들이었다. 니고데모도 바리새인이었지만, 달랐다. 주님 앞에서는 내세우지 않고 내려놓았다.
둘째, 주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심을 알았다. (아직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온 이유는, 주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증해주는) 표적’임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과 대면하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주님을 높이며 긍정적으로 표현한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주님 외에는)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바리새인들은 기적을 보편적인 현상으로 믿고 있었다. 몸소, 퇴마(退魔)나 축귀(逐鬼)를 행하기도 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에 익숙한 상태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일으킨 기적을 (표적으로 생각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종교적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그들과 달리 주님을 인정했다.
1-2.이러한 니고데모의 태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준다.
①니고데모처럼, 우리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히, (심령이 가난한 자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점검하게 한다. 자신의 연륜과 사회적 지위, 경험과 지식을 내려놔야 한다. 어린아이 같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존재이므로 날마다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양육 받아야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한 ②올바른 신앙의 고백이, 우리의 신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2.니고데모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주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우리’라는 복수형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마치, 항간에 떠도는 의견을 취합하여 전달하듯 하여, 향후에 발생할 책임이나 비난에 대해 피해갈 여지를 남기는 비굴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니고데모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3.표적에 대한 경외심을 표출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나야 함을 말씀하셨다.
니고데모에게 있어 초미의 관심사는 ‘표적’의 비범함에 머물렀지만,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약속을 따라 보내신 그리스도’이심을‘ 니고데모가 깨닫고, 표적의 의미에 걸맞게 거듭나서 하나님나라를 누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하셨다(:5) ‘거듭’이란 단어는 ‘다시’, ‘새롭게‘라는 의미 외에도, ’위에서부터‘라는 의미도 있다. 즉, ’거듭남‘은 ’위에서부터 난다‘는 뜻이다. ’물과 성령으로부터 나는 것‘도 결국은 같은 뜻이다.
4.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위에서부터 태어날 수 있을까?(:13-15)
우리는 위에서부터 태어날 수 없다. 그래서, 위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고 하셨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에 계시던 분이시고,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신 유일하신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다시 하늘에 올라가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모세가 만들어서 장대에 매단 놋뱀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나았던 것처럼, 십자에 못 박혀 높이 들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거듭나는 길은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길 외에는 없다.
5.(맺는 말)
하나님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계기와 과정들을 통하여, 구원과 생명과, 성경말씀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신다. 각자의 동기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거듭나서 구원받으려면 방법은 단 하나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가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려야 한다. 마음과 입술로 회개하고 삶을 돌이키며,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이 길만이 완전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니고데모는 인간적인 방식에만 얽매여, 거듭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표했었다. 니고데모가 가졌던, 어리석은 생각을 초월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셔서 제시하시는, 참으로 놀라우신 방법을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한다. ①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는, 감히, 상상조차할 수도 없는 경이적인 방법과, ②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신 사랑, 예전에는 도무지 느껴보지도, 표현해볼 수도 없었던 엄청나게 크신 그 사랑을(:16) 가슴속에 늘 뜨겁게 간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