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중, 언급한 순서상 앞의 네 교회는 외부에서의 도전으로, 나중의 세 교회는 내부에서의 문제로 흔들렸다. 그동안은 이러한 난관에 대한, 주님의 진단과 제시하신 해결책에 대해 각각 나름대로 살펴봤다. 이와 함께, 이제는 각각에 대한 개별적인 고찰뿐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이를 위해, 일곱교회의 성격을 대변하는 핵심단어(key word)로써 살펴보길 원한다.
①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과 ‘진리사수’다. 거짓 교사와 자칭 사도라는 자들이 교회를 혼란하게 했으나 진리를 잘 사수하여 교회의 순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만남에 대한 사랑의 감격과 기쁨을 잃어버렸다. 수평적으로는,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어 환영하기보다는, 냉정하게 검증해야 했기에, 권속으로서의 신뢰와 사랑이 식어버렸다. 주님께서는,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2:5a)’라고 하셨다. 돌이켜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신다고 하셨다.
②서머나교회는, ‘환난’, ‘궁핍’ 그리고, ‘참된 부요’다. 서머나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인조합이나 유대인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소외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생존이 위협받을 만큼 극도로 궁핍했다.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여겼으나, 주님은, 진정 ‘부요한 자’라고 평가해주시면서, 생명의 관을 받을 것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되리라고 일러주셨다.
③버가모교회는, ‘사탄의 권좌’와 ‘충성된 증인’ 그리고, ‘발람의 교훈’이다. 버가모는, 정치와 권력의 중심지였다. 로마황제에 대한 숭배도 열렬했다. 이처럼, 사탄이 모든 것을 통치하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으로, 영육으로 몹시 음란한 도시였다. 믿음을 지키려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탄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 때문에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순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성도는 영육의 음행을 저지름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이탈 했다. 주님은, 돌이키라고 촉구하시면서, 감추어진 만나와 새 이름이 기록된 흰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④두아디라교회는, ‘이세벨’과 ‘남은 자’다. 사랑과 믿음과 섬김의 역사가 처음보다 나중으로 갈수록 더욱 더 풍성해진, 참으로 아름다운 교회였다. 그러나, 은사에 있어서, 특별한 존재인양 자처하며 현혹시켰던 이세벨의 간계에 의해, 교회의 일부가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여 믿음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럴지라도 남은 자에게, 주님은 말씀을 통해 검증하고 믿음을 더욱 온전케 하라고 권면하시면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별을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다.
⑤사데교회는, ‘죽은 자’다. 천혜의 요새에 입지해있어 외부의 침략에 대해 안전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여, 현실적인 어려움이 없다보니, 신앙에 있어서도 안일했다. 영적인 갈급함이나 갈증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이처럼, 교회를 재무장시킬 외부의 공격이나 도전이 전혀 없다면, 영적인 침체에 빠져 교회가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주님은, 돌이키면, 흰옷을 주시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⑥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과 ‘배반치 않음’이다. 빌라델비아는 역사가 일천하고 딱히 내세울 것이 없는 작은 규모의 도시였다. 교회 또한 그랬다. 볼품없고 빈약하여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만연한, 종교적 혼합주의의 유혹과 유대공동체의 따돌림에 의해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열린 문의 역할을 잘 감당하여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의 두 기둥이 되게 해주시고 새 예루살렘과 주님의 새 이름을 새겨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⑦일곱교회 중 마지막인, 라오디게아교회는,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토하여 버리리라’ ‘문 밖에서 기다리시는 주님’ 이다. 경제적으로 부요했기에, 그곳의 교회와 성도들은 물질의 풍요함을 믿음에 대한 보증이며, 영적보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주님은 ‘역겨워 토해내리라’고 하셨다. 서머나교회와 완전히 상반된다. 물질적 부요함과 세상의 힘과 권력에 대한 추구를 믿음에 대한의 보상으로, 그 상태가 유지되는 근거와 이유를 믿음의 보증으로 간주하려는 변질된 믿음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훈련을 통해 온전케 되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언급하셨다. 형편과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당시의 일곱교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교회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다. 상황이 아무리 열악해도 마음의 문을 열면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예비하신 부요함을 나누며 함께 누리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해하여, 순종할 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2.이상의, 일곱교회의 모든 상황들을 통해서 주시는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험과 도전이 없는 교회는 없다는 가르침이다. 평안하다고 생각될 때에, 안일함에 매몰되지 말고 끊임없이 돌아보며 믿음의 자리를 점검해야 한다. 둘째, 주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실뿐만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셔서 결국은 이기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 약속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이겨서 누릴 영광과 은혜를 기대하게 하신다.
3.(맺는 말)
왜, 굳이 도전이나 갈등과 같은 어려움을 자초하며 살아야 할까? 믿음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에덴에서의 사탄의 유혹에 의한 타락과 사사시대의 영적무지를 답습하고 있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기를 독려하므로, 무질서와 혼란을 가중시켜서 파멸에 이르게 한다. 만족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매몰된다. 그 인생은 광야에 내팽개쳐진 상태다. 선택할 길이 무한정 많아 보이지만,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잃어버렸으므로 결국은, 두려움에 휩싸인다. 들을 귀 있는 자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말씀을 들을 귀가 있다. 말씀을 조명해주시는 성령께서 늘 함께 하시므로 복된 자임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