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49. 시온산에 선 어린양과 십사만 사천(계14:1)

(도입) 이제는, 붉은 용의 하수인인 두 짐승의 표를 받고 그에 경배하는 자와, 끝까지 그 표를 거부하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자의 결국에 대해 함께 묵상해보도록 하자.
1.본문은, 시온산에 서 계시는 어린양의 환상으로 시작한다(:1a)
이는, 하늘 전쟁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난 붉은 용이, 바다 모래 위에 대치해 있는 모습과 대비된다(12:17b) 붉은 용은, 두 짐승을 사주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짐승의 표를 받게 함으로써, 자신이 진정한 통치자요 승리자인 듯 행세한다. 두 짐승은, 세상을 현혹하여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경배 받는 자로 군림하려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승리하셨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붉은 용의 대척점이 되는) 시온 산에 높이 서게 하신다. 친히 정하신 진정한 통치자를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 말씀이 성취된 장면이다(시2:1-6) 그 자리에, 십사만 사천이 그리스도이신 어린양과 함께 했다. 어린양과 함께 한 십사만 사천은, 이마에 어린양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공동체인 ‘교회’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만이 아니라, 교회의 승리가 된다는 뜻이다. 이마에 새겨진 낙인은, 어린양과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임을 표시한다(사43:1) 한걸음 더 나아가, 소유주인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공급하심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게 도우시겠다고 이미 천명하셨기 때문이다(사40:9-11, 시23:1-6) 한시적이 아니라, 영원까지 함께 하신다(마28:18-20) 이마에 새겨진 이름에는 이 모든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2.그런데, 주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이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가 뭘까?
그는, 유배지인 밧모섬의 채석장에서, 노예 상태로 노구를 이끌고 힘겨운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믿음을 지키려 짐승의 표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비단, 사도요한뿐만이 아니다.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던 성도들은, 박해 때문에 토굴을 파서 피신하거나, 고향을 등지는 떠돌이가 되어야 했다. 체포되어 투옥되거나 채찍에 맞기도 했다. 그 중의 어떤 이는 사나운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타오르는 불속에서 죽임을 당함으로써 순교의 길을 걷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두 짐승으로 인한 핍박과 삶의 피폐함뿐이었다. 너무나도 버거웠을 사도요한에게, 주님은 ‘시온 산에 높이 서 있는 어린양’ 즉, ‘이기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위용’을 보여주셨다. 무미건조하고 평이한 서술처럼 보이나, 원문은 그렇지 않다. 사도요한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크게 탄성을 지르며 이 장면을 기록했다. 붉은 용의 하수인인 두 짐승이 획책했던, 모든 궤계와 도발을 완전히 물리치시고, 그리스도가 궁극의 승리를 쟁취하셨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와 동시에, 두 짐승의 억압과 핍박 중에도 인내하며 믿음을 지킴으로써, 끝까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던 ‘성도들의 승리’이기도 하다는 격려의 표시다.
3.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세상의 속삭임과 유혹 앞에서, 인내하며 흔들림 없이 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우리에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께서 이기셨다고 말씀해주신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세상이 늘 이기는 것 같다. 세상이 말하는 대로 살아야, 성공하여 행복을 누리며 편안할 것이라고 느낄 때도 있게 한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는 믿음의 표를, 세상에서는 짐승의 표를 드러내면서, 양다리를 걸치려는 이들도 생겨난다. 본문의, 이기신 어린양의 환상은, 이렇게 흔들리며 갈등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와 격려가 담긴 대답이다(사41:10) 기억하라! 우리는, 이미, 어린양과 함께 승리의 산, 시온에 서 있다! (붉은 용과 그의 두 짐승이 완전히 패퇴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교회가 참으로 무기력하게 보인다. 세상이 교회를 이기고 교회위에 군림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교회된 우리의 머리로 삼으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케 하셨다(엡1:22) 우리가 이렇게 그리스도와 묶임으로써 연합한 존재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시며 홀로 두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이 사실은 종말의 끝인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비로소 성취되는 일이 아니다. 종말의 전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된 모든 자가 누리는 승리다. 그러므로, 시온산에 높이 서신 어린양과, 십사만 사천의 영광은, 사도요한과 당시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힘의 위력과 역사하심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아야 한다.(엡1:19) 이렇게 되면, 우리는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포기하지도 않게 된다. 우리는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는 자이므로, 이러한 힘과 능력과 다스림 안에 이미 들어와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4.(맺는 말)
세상이 늘 이기는 것 같은가? 세상은 그렇게 주장한다. 자신들과 함께 해야만 참된 부요와 승리와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기만한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표를 받아, 그들과 같은 길에서, 그들이 섬기는 짐승인, 권력과 지식, 물질과 자녀, 등등의 다양한 우상을 숭배하자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란을 당하고 죽게 된다고 협박한다. 이러한 순간에 되새겨 봐야 한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지금 어떤 길에 서 있는지? 삶의 주인이 누구이며, 신앙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그리고, 궁극의 승리가 누구에게 있는지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늘 자문해봐야 한다. 주님은 이에 대해 ‘승리의 산 시온에 어린양이 서 계심을 기억하라’고 답해주신다. 우리는 지금,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는 존재다. 세상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새 노래를 부를 자다. 이러한 신분에 합당한 말과 행함을 통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