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19.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계3:7-13)

(도입) 빌라델비아는 역사가 일천한 도시다. 잦은 지진으로 토양이 척박했지만 포도나무 재배엔 적합하여 곳곳마다 포도원이 있었다. 이 때문에, 포도주의 생산량이 무척 많았고,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숭배도 널리 퍼져 있었다. 빌라델비아는 헬라문명이 동방으로 진출하는 관문의 역할도 했다. 그래서, 헬라와 소아시아의 혼합된 종교가 융성했다. 이와 함께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믿는 강력한 유대인의 공동체도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세워진 빌라델비아교회는, 서머나교회처럼, 주님으로부터 책망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였다.

1.빌라델비아교회가 책망 없이,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받은 이유는 뭘까?

빌라델비아교회를 향한, 주님 자신에 대한 묘사가 이를 암시해준다. 거룩하고 진실한 교회였기 때문이다(:7) 즉, 복음과 믿음과 진리에 대해 흠이 없고, 불순한 요소의 혼입 없이 순수하고 깨끗하여, 세상과 확연히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거짓이 없고 진실하여, 믿음에 대해 마음과 뜻을 온전히 쏟는 진정성이 있는 교회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가,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열린 문’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다. 이로 인해 교회의 존재이유와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었고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었다.

2.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거룩하고 진실할 수 있었으며, 열린 문이 될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8b)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빌라델비아교회의 구체적인 수고와 믿음의 행위를 알고 계셨다. 교회의 규모가 초라할 만큼 작고 볼품이 없었다. 성도들의 사회적인 신분과 지위도 변변치 못했다. 지역사회에 대해 영향력을 끼치기엔 역부족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인내함으로써 주님을 향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영광스런 문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말씀을 지켰다’라는 의미는, 머리로 알고 가슴에 간직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삶으로 드러내어 말씀이 삶이 되는 순종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초라하고 영향력 없는 교회 같았지만,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께 칭찬받은 교회였다.

3.주님은 이처럼, 세상에서 큰 권세와 영향력을 갖기만을 원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하여, 대단히 규모 있고 유력한 지위에 있어야만, 복음을 더 효과 있게 전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다 용이하게 세상에 보여줄 수 있으리라고 오해한 적은 없었는가?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으나, 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해 보여주시는 주님의 뜻은 다르다. 세상에 비쳐지는 규모나 능력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관건임을 가르쳐주신다. 부연하자면, 하나님께서는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말씀이 삶이 되도록 하는, 구체적인 믿음의 헌신과 섬김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게 하신다는 뜻이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탓에, 유대인 공동체에서 출교당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매장되다시피 했으나, 인내하며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물질적 유혹과 쾌락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인내하면서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기에 (서머나교회의 감독인 폴리갑이 순교할 때에)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교회는 무려 11명이 순교자의 반열에 드는 영광을 누렸다.

4.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성도들에게, 외적증거와 내적 증거를 통해 확신을 주셨다.

외적으로는, 유대인 공동체가 빌라델비아교회에 굴복하게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이를 통해,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사실과, 빌라델비아교회가 지향하는 바가 바르고 옳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9) 유력하고 강력한 유대인 공동체에서 축출되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난관과 고난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빈번한 지진으로 재난을 당하여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를 늘 두려워했는데, 외적 증거는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음을 뜻한다. 내적인 증거도 약속해주셨다. 종말의 날, 심판의 때에 심판을 면하게 될 것을 약속하심으로써 내면적 확신을 갖게 하셨다(:10) 즉, 언제, 어떤 경우에도 은혜의 자리에 머물게 하시고, 늘 함께 하시며 결코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와 아울러, 최종적으로,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과, 모든 죄를 용서받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는 은혜의 문 입구에 세워진 두 기둥인, (그가 세우셨다는 의미의) 야긴과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의) 보아스와 같은 영광스런 존재로 삼으시겠다고 약속해주셨다 (cf.왕상7:21)

5.(맺는 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화려하지도 않고 대단한 능력을 소유하지 못한 초라한 모습으로 비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진실함과 거룩함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지켜 행하면서 주님의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서 이루어내는 문으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가 이러한 일을 행할 동안에는, 분명한 외적 증거와 내적 증거를 통해 모든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뿐만 아니다. 성전의 두 기둥과 같이 복되고 영광스런 존재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삶이 되도록 살아가는 성도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