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구원’ 영원한 감사의 제목(마17:14-18)

(도입)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삼대 절기인 유월절(=무교절) 칠칠절(=맥추절, 오순절) 수장절(=초막절) 중 하나다(출23:14-16)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이를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함께 묵상해보자.
1.먼저, 맥추절은 농경사회만의 절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 목적의 핵심이, 구속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월절과, 수장절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부활하신 이날은 주님께서 죽으신 유월절(금요일)로부터 이어지는 (한 주간의) 무교절 기간의 첫 안식일(토요일) 다음날(주일)인 초실절에 해당한다. 초실절이후의, 칠 주후인 오(五)십(旬)일째가 맥추절(麥秋節)인데,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이날에 밀이나 보리(麥)를 추수(秋收)하여 그 해의 첫 수확물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의 일환으로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기도 하다(행2:1-4)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가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즉, 맥추절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해, 성령의 인(印)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선물을 받은 사실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날이다. 그런데, 성령의 인치심이 우리에게 감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기업을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기 때문이다(엡1:11-13) ‘기업’은 ‘유산’의 의미와 더불어, ‘특권을 배당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신약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맥추절의 의미는, 성령의 인치심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확인하고, 되새기며 감사하는 날’이 된다는 뜻이다.
2.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배당받은, 특별한 권리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주님께서는, 빌립보 가이사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가르쳐주시려고 일부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오르셨다. 그 곳에서 (율법을 떠올리게 하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엘리야가 영광중에 나타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Exodus : 출애굽)하실 것’을 말했다. 이 장면은, 예수그리스도를 인한 참되고 영원하며, 온전하고 실패가 없는 출애굽에 대해 선포했음을 의미한다. 모세가 이끈 출애굽은 완전하지 못했다. 실패했다. 변화산은, 이러한 실패에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온전한 구원을 선포한 곳이다. 이러한 상황후에 변화산을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해주신다(마17:14:18, 막9:17-18) 그의 아버지는 간질이라고 말했었다(:15a) 간질의 원어에는 ‘미치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간질이라면 불이나 물에 뛰어들지는 않는다(:15b) 그 아들은, 마귀와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실성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그 때, 예수님은 아직 변화산에 계셨으므로) 당장은 만날 수 없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귀신들린 이 아들과 같다. 비참하다.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인 사탄을 추종하면서 세상풍조를 따르는 삶이므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 때문이다(엡2:2-3) 이런 존재를,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치료하여주셨다(:17-18) ‘진리에 대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귀신을 꾸짖으셔서 나오게 하시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막9:25-27) 성령의 이러한 인치심의 은혜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는, 귀신 들렸던 이 아들처럼,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후 5:17) 이 광경을 접한 아버지와 아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너무나 감격하여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듯하다. 오로지 감사만 끝없이 연발했으리라 생각한다.
3.이 아들이 누굴까? 바로, 우리다. 이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셔서, 다시는 악한 영에 의한 지배를 받지 않게 해주셨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로서의 특별한 권리요, 특별한 배당인,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을 자가 되게 해주셨다. 이 사실을 되새기고, 다시 확인하면서,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날이 맥추감사주일이다. 그래서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이 이제 다시는 우리를 얽어맬 수 없다’고 선언했다(롬8:1-2) 하나님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리에 앉게 하셨다(엡2:4-6) 이것이 우리의 기업이다. 귀신들린 아이가 누렸던 치유와 회복도 감사하지만, 그 회복의 궁극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기억하라! 그런데, 굳이 특정한 날을 정하여 지키게 하신 이유는 뭘까?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은 우리를 분주하게 하고, 욕심이 팽배하게 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금방 망각하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과 그 완성을 확인시켜주고,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위해, 특정한 절기를 제정하셨다. 이 날에,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와,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를 확인하게 하신다. 이러한 절기들은, 결국, 영적 침체에서 우리를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으로 허락하셨음을 명심하자.
4.(맺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맥추절과 같은, 절기를 허락하심은 구속사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내가 받은 구원과, 그 생명의 부요함을 새롭게 확인하도록 하신다. 우리의 영혼이, 세상의 근심과 염려 때문에 침체되어 있을 때, 지친 어깨를 토닥이시며 회복시키신다. 다시, 감사의 자리로 복귀하도록 촉구하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들은, 하나님의 크고 풍성하신 은혜를 누리게 하신다. 늘 그 안에 거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임을 잊지 말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에 녹록지 않은, 죄악된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부르신 사명을 감당하며, 말씀대로 삶을 살아냄으로써 하나님의 찬양이 되자. 이 감사가 평생 충만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