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14.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계2:17) 

(도입) 주님께서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할 만큼, 버가모는 영과 육의 음행이 가득했던 도시였다. 믿음을 지키기엔 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순교하는 경우도 생겼다. 극히 일부지만, 세상과 타협하여 교회의 순결함을 잃기도 했는데, 회개의 기회를 주셔서 믿음을 회복하게 하셨다. 주님은 이들뿐 아니라, 억압과 핍박 속에서도 변함없이 믿음의 자리를 지켜낸 성도들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받는 자만이 그 위에 기록한 새 이름을 알 수 있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 약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1-1.‘만나’는,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가 된 ‘하늘의 양식’이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의 식량이 바닥났을 때부터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하여(출16:4) 가나안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에 그쳤다(수5:12) 버가모교회의 형편은 광야생활과 유사했다. 신앙 때문에 지역사회로부터 배척을 받아,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생존할 수 있는 먹거리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어 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러한 때에 주님께서 ‘감추었던 만나’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다. 우리의 생존은 배를 채울 양식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다(신8:3) ‘만나’는 ①하나님이, 육신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는 부요하신 분이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줄 능력이 있으므로 공급해주시겠다는 약속이다. ②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으로 의미가 있는 참된 생존은, 육신을 위한 양식에 있지 않다고 말해준다. 영생을 얻게 되는 참된 생명의 길이,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에 의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에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③이와 더불어, 참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참된 양식이 되셔서 늘 함께 하실 것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다(요6:35)

1-2.그렇다면, 참 생명의 떡인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양식으로 삼을 수 있을까?

①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룸으로써 가능하다 ②또한, 이 땅에서의 필요에 대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힘입고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함으로써 충족받는 은혜를 누리는 삶으로 실현된다(요14:12-14) 행위로서의 기도뿐 아니라,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와 공급하심 안에서 존재한다는 겸손한 고백과 함께 그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내는 모든 과정이 이에 해당된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공적예배를 통해, 막연히,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위로를 받는 정도로만 생각하지는 않는가? 주님은 실제적인 도움과 공급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믿음의 길은, 광야와 같은 세상살이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을 실제적으로 경험하여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 주님과 함께 거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여정이다. 이러한 신앙의 체험들이 말씀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건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받은 자로서의
존귀함을 지켜내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보여주는 복의 통로가 되도록 부르셨음을 기억하라!

1-3.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버가모교회와 같은 간절함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먹고 사는 일에 아쉬움이나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절실함과 간절함이 사라진 피상적인 기도가 되고, 의례적인 신앙의 의무처럼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다음세대를 위해 예비하신 것은, 땅의 것에 견줄만한 필요가 없을 만큼 놀랍고 엄청난 것이다. 이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근원적인 기쁨을 주신다(요16:24) 이 기쁨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행2:28)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①세상과 마귀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고(행16:18) ②실제적인 치료의 역사를 목도하게 하신다(행3:6,16) 그러므로, 종교인으로만 머물지 말고, 세상에는 감춰진 하늘의 비밀한 양식인 ‘만나’로 채움 받는 자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욕심에 이끌려 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믿음의 향기가 아니라 썩어서 악취를 내게 한다(출16:20)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이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나, 그 표현을 다르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각각의 필요와 사정을 세세하게 알고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버가모교회에는 ‘감춰진 만나’라는 표현으로 위로하시며 힘을 북돋아주셨다.

2.‘만나’에 이어,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신 의미도 나눠보자.

당시의 흰 돌은 재판에서의 무죄를 상징하거나 축제의 초대권으로 사용했다. 버가모교회 성도는 흰 돌이 아니라, 소유를 박탈당하고 생업의 터전에서 배제된 검은 돌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주님께서 참된 축제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부여하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위에는, 받는 자만 알 수 있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데, 아마도,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이름과 함께,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 베드로, 바울처럼, 새 이름을 부여받아 새롭게 된 정체성을 나타내는 성도의 새 이름이 기록될 것 같다(고후5:17) 결국, 흰 돌을 주시겠다는 의미는  새 이름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잔치에 들어가게 된다는 약속을 뜻한다.

3.(맺는 말)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감춰진 만나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버가모교회 성도들이 직면한, 생존의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소외와 배척과 슬픔과 아픔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어루만지심과 보살핌과 위로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끝가지 책임지시며 하나님 나라까지 함께 하며 인도하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이미, 동일하게 이것들을 받았다. 진정, 소중하게 여기며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지 한주간의 삶을 통해 점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