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왕이 베푼 혼인잔치(마22:1-14)

(도입)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화하는 행위를 하고, 누가 준 권위로 성전에서 천국에 대해 핵심적으로 가르치는지 따지면서 물었다(마21:23) 함축하면, ①’천국‘이 어떤 곳인가?’와 ②’당신이 구원자인 그리스도인가?‘ 를 묻는 질문이다. 본문은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비유‘로 대답하신 내용이다.
1.예수님은 천국을‘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잔치를 베푼 임금’과 같다고 하셨다. 혼인잔치를 준비한 임금은, 초대받은 이들에게 종(=사신, 대사)들을 보내어, 잔치에 참석하게 했다. 하지만, 모두들 꺼리며 거절했다. 그래서, 또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권유했다. 혼인잔치에 대한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이게 했다. 이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초청을 외면했다. 일부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핑계하며 애써 피했고, 나머지는 왕의 종들을 모욕했다.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 (왕의 의사를 전달하러간 자를 죽인 반역을 저질렀으므로) 왕이 분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진멸하고 터전을 불살랐다. 왕은, 혼인잔치의 복과 큰 기쁨을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을 모두 데려와 준비된 잔치자리를 채우라고 했다. 잔치자리가 가득하게 되자, 임금이 손님들을 살피러 왔다. 그런데, (잔치에 참여하려면 마땅히 필요하므로, 잔치 집에 당연히, 미리 준비되어 있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한명이 눈에 띄었다. (잔치에 참석할 필수 요건인) 예복을 입지 않고서 어떻게 입장했느냐고 물었으나, 아무런 대답도 못하자 내쫓아버렸다.
2.본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며,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살펴봤으면 한다. 천국은(:2) 하나님의 나라인데, 육체적 죽음이후에만 한정하거나, 장소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베푼 혼인잔치와 같이, 기쁘고 즐거운 환경과 분위기에서 누리는 느낌을 말한다. 왕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왕궁과 같은 환경으로, ‘새 예루살렘’이라고 한다. 이는 특정 장소가 아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보호하시고 공급하시는 은혜의 누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참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고 온전하시며 전능하신 왕으로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안전하고 부요한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계21:2-22:2) 새 예루살렘은 큰 성이다. 그 성벽은 벽옥이나 수정처럼 맑은 빛이 나고, 한 개의 진주로 된 문이 동서남북 세 개씩, 열두 개가 있다. 문을 열면 정금 길이 이어진다. 표현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석으로 묘사할 만큼, 놀랍도록 가치 있고 황홀한 곳이다. 그 길 가운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발원한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 강 좌우에는, 달마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만국의 질병을 치료하는 잎사귀가 있는 생명나무가 있다. 참으로 풍요하고, 사망이나 질병, 아픔과 애곡이 없는 곳이다. 게다가, 분위기는 늘 혼인잔치와 같다.
3.이 잔치에는 왕의 초청을 받은 자만 들어간다. 왕의 초청 없이는 참석할 수 없다. 먼저 초대받은 이들은 의지적으로 거부했다(:3) 왕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혼인잔치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다른 종들을 보냈다, 이전보다 세세하게 설명하면서 재차 권했다. 하지만, 더욱 매몰차게 거절했다. 손수 파종하여 추수하는 기쁨과, 자신의 노력으로 실현한 이상과 꿈에 대한 성취감을, 왕이 초대한 천국 혼인잔치의 기쁨과 가치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왕을 무시했고, 천국 혼인잔치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천국은 혼인잔치를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준비해놓으셨다. 하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쫓겨났다. 혼인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부한 자는, 그곳에 준비된 예복을 거부했다. 자신이 입은 옷이 예복보다 낫다고 여겼으므로, 굳이 예복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베푼 천국 혼인잔치에 참석하려면, 자신의 옷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예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 우리의 노력이나 선과 공의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예복은,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다 (요14:16)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으로 보내심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다(요3:16-17)
4.(맺는 말)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왕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진정으로 전하시고 싶어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아들의 혼인잔치의 기쁨과 풍성함과 영광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왕의 영광과 기쁨을 깨닫고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백성들을 초청하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영화롭고 찬란한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천국에 대한 무지로 인해, 천국을 외면하고 있다. 자신의 힘과 노력에 의한 성취보다 무가치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천국 혼인잔치에 초청하는 이 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초청하셔서 함께 천국 혼인잔치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원하신다. 부디, 이 초청에 즐거이 응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길 바란다. 천국을 사모하는 이유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힘들어 도피처로 삼기 위함이 아니다. 천국은 이 땅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참으로 가치 있고 복되며 유일한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경우에는, 땅의 것을 포기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곳에서 누릴 영광과 기쁨이 너무나 크고 비할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할 수밖에 없다. 예수그리스도는, 이러한 천국 혼인잔치에 참석할 자격을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인 예복이다. 초청받은 모든 이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여하여 천국에서 베푸는 혼인잔치의 기쁨과 복을 누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