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본문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개개인의 믿음의 현 위치가 어떠한지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지를 살펴보길 원한다.
1.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39)
‘이 잔’은, 괴로워 죽을 만큼의 번민과 슬픔이며, 근심이기 때문이다(:37b-:38a) 기도의 모습도 평소와 달랐다(눅18:11a, 13b) 얼굴을 땅에 대시고 무릎을 꿇고(눅22:41) 엎드리셨다(:39a, 왕상18:42) 너무나 절실하게 기도하신 탓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눅22:44) 진액을 짜내며, 무려 세 번에 걸쳐서, 간절히 기도하셨다. 십자가를, 얼마나 힘든 자리로 인식하셨는지를 능히 짐작케 한다. 결국엔,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너무나 힘들지만, ‘이 잔’을 마시고 그 길을 가야하는 이유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즉, 이 땅에서,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삶에서의 일관된 목적이라는 뜻이다.
2.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목적은 어떠한가?
죽을 만큼의 괴로움과 아픔 때문에 울부짖었던 때를 떠올려보자. 그 근본 이유가 무엇이었나? ‘죽으심으로, 죽음을 이기시는’ 주님의 십자가 밑에서, 고작 몇 푼의 가치도 없는, 예수님의 속옷을, 서로 차지하려 아귀다툼하던 로마의 군인들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나? 신앙생활의 이유가, 이 땅에서의 삶의 필요를 충족시켜서, 좀 더 여유 있고, 편하며, 돋보이도록 하려는 목적이라면 불쌍한 자일뿐이다(고전15:19)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누릴 부요함은 이 땅의 그 무엇과도 견줄 필요 없이 크고 놀랍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후8:9, 약2:5) 이미, 우리는 부요한 자다(고후6:10)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기도는 바뀌어야 한다. 이 땅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해야 한다. 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 직면하는 슬픔과 근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 이런 삶을 사는, 선교사님들과 북한의 지하교회들, 믿지 않는 가족과 친척들과 지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함께 하도록 기도로 동역해야 한다.
3.그런데,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의 근심과 슬픔의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쳤던 주님의 절규에서 찾을 수 있다. 성자 예수님은, 창세 이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늘 함께했다. 단 한시도 떨어진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외면당해 단절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단절시키는 죄의 결과는 참으로 혹독하고 참혹하다. 엄청난 근심과 슬픔을 안겨준다. 둘째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예수님의, 영적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 때문이다. 죄와 허물로 이미 참 생명을 잃었던 우리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영적인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으신 예수님만이 영적 죽음에 대한 비통함과 근심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 고통과 슬픔의 잔을 받으심으로써,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대속하시려 하신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게 하셨다(갈1:4)
4.이제,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은혜에 합당한 삶이, 자신에게 어떻게 구현되는지 점검하며 확인해봐야 한다. 이것이 ‘사랑나눔축제’다. 주님으로부터 허락된 놀라운 ①은혜를 다시 온전히 회복하고 이에 합당한 삶을 다짐하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를 통해 온 인류가 당해야 할 슬픔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 은혜를 받은 우리는, ②그 누군가에게 이 은혜가 흘러가도록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추수꾼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명은 잘 준비되고 훈련된 자에 한정하지 않았다. 주님의 부활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일지라도 수행해야 한다(마28:17) 바울은 자신의 전도의 여정전체를 ‘선한 싸움이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딤후4:7) 믿음을 지키기 위해, 예배와 기도... 등등도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고. 이에 더하여, 예수님이 참 그리스도이심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는 선한 싸움을 동반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는 접근이 잦은, 배우자와 자녀, 부모님과 친척과 지인에게 전할 때, 그곳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 된다(행1:8) 이런 싸움을 싸우면서 믿음을 지키는 모든 자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딤후4:8)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진정 뜨거운 마음과, 잃어진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심정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길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둔 열매만 기억하시지는 않는다. 우리가 뿌린 씨앗까지도 헤아리신다. 내가 거둘 수 없다고 염려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5.(맺는 말)
겟세마네의 기도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을 향해야함을 가르쳐 주신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절규하며 부르짖어야 한다. 그 뜻이 성취되지 않음으로 근심해야 하고, 그 뜻이 성취되는 과정에 슬퍼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부르짖으며 중보해야 한다. 주님의 슬픔과 근심의 이유는, 십자가에 당할 육신의 고통 때문만이 아니다. 저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 받아 버림받는 영적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이었다. 죄에 대해서는 이러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셔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하나님은 그 자유함이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여 모든 이가 함께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