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61.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계18:1-8)

(도입) 앞에서, 큰 성 바벨론이라고도 일컫는 음녀는, 악하고 부도덕했으며, 순교자의 피에 취해 있었기에,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고 했다. 이후부터는, 이 사실을 부연하여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 중에서 오늘은, 큰 성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선포와, 그 이유에 국한해서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1.또 다른 천사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며 외쳤다. (:2)
두 번이나 반복하여 ‘완전히 무너졌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심판의 결과, 활력이나 생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죽음이 엄습한 황량한 모습이 되었다. 귀신의 소굴이 되고 각종 더러운 영과 가증한 새들이 들끓는 곳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예전의 화려했던 바벨론! 모든 권력 위에 군림하여 힘을 발휘하고, 온갖 진귀한 것들로 치장하면서 육신의 쾌락을 만끽하던 바벨론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자의 모습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는 듯하지만, 심령의 깊은 곳에는 죽음의 황폐와 황량함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요3:18)
2.웅장하고 휘황찬란한 위용을 자랑했던, 바벨론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3)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무너졌다고 말씀한다. 영과 육의 음행으로, 우상숭배와 육신의 쾌락을 쫓는 삶의 결과다. 땅의 왕들과 상인들도 바벨론에 빌붙어 달콤함을 누렸지만 그 결국은 이와 같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음녀의 음행에 즐거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음녀가 심판을 받은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면서, 자신이 여왕으로 등극한 존재요, 과부가 아니므로 슬픔을 맛보지 않는 존재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이게 왜 죄가 되고 심판의 이유가 될까? 단순히, 지극한 자기애와 높은 자존감을 드러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여왕이며 과부가 아니다’라는 말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을 다스리거나 통치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는 존재임을 시사하고 있다. 자신이 가장 존귀하므로 마땅히 영광을 누릴 존재라고 여기면서 살아왔음을 나타낸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우상화요, 우상숭배다. 하나님외의 다른 것에 소망을 두거나 기쁨을 두었기 때문이다.
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의 첫 출발점이 ‘하나님에 대한 인정이며 인식’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존재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께 있으면, 자신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라고 고백한다(마5:3) 그런데, 음녀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도우심에 대한 필요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이 심판의 이유다. 음녀처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하루 동안에 그들에게 재앙이 이르게 된다고 한다(:8) ‘하루 동안’의 의미는 ‘갑작스럽게’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그 결과는 사망이고 애통함이며 기근이다. 그 결국은 불에 살라진다. 그러므로, 부러워하지도 말고, 가슴 아파하거나 탄복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도요한 조차도 잠시 마음을 뺏길 만큼 세상이 엄청나지만, ‘갑작스레’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사라질 것에 불과함을 잊지 마라!
4.그렇다면, 우리는 어찌 해야 할까? (:4)
음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음녀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아야 한다. 가장 우선은 (큰 성 바벨론인) 음녀에게서 나와야 한다. 물리적 분리를 통해, 세상을 등지거나, 믿지 않는 지인들과의 절교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면의 탐심과 세상의 것으로 자신을 부각시켜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연약함에서 떠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소금의 역할과 빛으로의 삶’을 다른 곳이 아닌, ‘ 이 세상’에서 구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존재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만이 참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싸움을, (음녀가 있는) ‘세상 속에서’ 싸워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음녀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5.(맺는 말)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복되게 하셨다.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다. 가정과 교회를 이루어 참 감사와 즐거움들을 누리게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서 그 기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빠뜨린다면, 복을 누리게 하도록 허락하셨던 모든 것이, 오히려 우리를 파괴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도구가 된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주권자 되심과 공급자 되심과 지키심에 대한 이 싸움을 세상 가운데 싸우면서, 싸움은커녕, 싸울 상대조차 될 수 없다는 자괴감과 전적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낌으로써, ‘자신의 연약함과 영적인 가난함, 영적인 빈곤을 넘어선 영적인 파산자임’을, 하나님 앞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토로하며, 이 싸움을 싸울 은혜를 갈구하는 삶을 사는, 이것이 가장 큰 복이다(마5:3) 하나님은 이런 자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게 하셔서 하나님의 부요하심과 은혜의 풍성하심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는 이 특권을,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싸움으로 하나님께 화답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의 싸움이 어디에 있었는지 돌아보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생명을 허락하시는 날까지,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엎드려, 이 싸움을 싸워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구하며, 삶의 자리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