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유대인의 존재이유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이 땅에 보여주기 위함에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복된 백성이다. 하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신분과 사역을 부정하고 모독함으로써 ①비방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명자로서의 유대인이 아니라) 혈통만을 근거로 하는 자칭 유대인일 뿐이며 심지어는 ②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셨다.
1.유대인들이 행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비방’의 근본 이유는 무지 때문이다.
이러한 무지에 의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부정하고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폄훼했다. 말씀에 토대한 바른 믿음에서 벗어나 종교인으로서의 열심에만 매몰되었다. 그릇된 종교적 신념을 갖게 되어 참된 진리 위에 서려는 이들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기득권과 유익을 위해 믿음을 배척하고 배제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구약의, 유대교만 존재했던 시절의 교회와, 신약의 기독교 교회가 모두 본질적으로 하나인 무형교회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자들이므로) 안타깝지만, 이 모든 비방이 거시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교회가 교회답게 행하는 역할을 방해했고 성도들을 환난과 궁핍으로 내몰았다.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신앙인은 언제든지 이러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
2.주님께서는, 이러한 유대인들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셨다.
사탄은 ‘참소하는 자’ 즉, ‘남을 헐뜯어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고발하는 자’다. 당시의 유대인들도 사탄과 동일한 작태를 자행했다. 공동체 내에서 기독교인들을 이단으로 단정하고 비판하며 로마의 관청에 고발했다. 그래서 ‘사탄의 회당’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눈에 들보를 가진 자다. 누구든지 남을 헤아리거나 비판할 만한 자격이 없는 자다(마7:1-5) 헤아림과 비판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일이다. 우리는, 사랑하고 용납하고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대해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자다. 원수에 대해서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함으로써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라고 하셨다(롬12:20) 헤아림과 비판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연약한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소속한 구성원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화목하면서 사랑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하나님에 대한 수직적 사랑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수평적 사랑을 함께 구현하는 십자가 사랑을 요구하신다. 사랑은 오래 참음에서 시작하여 견뎌냄으로 종결된다(고전13:4-7). 이해하고 용납하며 화목케 하는 사랑은 성도가 받은 특권에 따르는 책임이다. 같은 맥락으로, 바울도 (신분을 변화시키는 구원은 이미 받았으니) 두렵고 떨림으로 늘 겸손하게 그리스도인다움을 나타낼 ‘사랑의 책임’을 수행함으로써 (성화의 단계에서의)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했다(빌2:12)
3.그런데, 고난을 겪는 서머나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과 약속은 다소 의아하다
환난을 해소해주시기는커녕,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셨고, 더 나아가서는 사탄이 몇 사람을 ‘반드시’ 투옥(시켜 순교)하게 된다고 하셨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적극적으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한 믿음의 여정에는 치러야할 댓가와 고난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핵심은, 그 환난이 ‘십 일 동안’만 이뤄지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십일은 ‘짧다’는 의미와 함께 ‘충분히 견디며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기간’ 즉,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하나님의 백성됨을 세상에 확인시켜줌과 동시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기에 합당한 시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단1;12-15).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다(10b).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봉사하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의 충성은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라는 의미이므로, ‘믿음을 잃지 말고, 믿음으로 감당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지켜라’는 말씀이다. 신실함을 유지하면서 버텨내라는 뜻이다. 이러한 성도는 (영과 육이 분리되는 육신의 죽음 이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영과 육이 부활하여 영원한 불 가운데에 던져짐으로써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생명의 관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서머나 교회뿐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교회와 향후의 모든 교회에게 동일하게 적용하셨기에 복수로 표현하셨다.
4.(맺는 말)
세상은 자신의 소유와 업적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지만, 성도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인생의 주인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하나님께 달렸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지키려 환난과 궁핍을 겪는 우리를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진정 가치 있는 하늘의 것을 위해, 잠시 있다가 사라질 땅의 것을 버려, 땅에서의 궁핍한 삶을 자초한 자로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땅의 것에는 눈길을 주지 말고 오직 하늘의 온전한 것으로만 누리고 만족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사탄처럼 참소하지 말고, 사랑하고 용납하면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책임을 감당하라. 이 땅에서의 믿음의 여정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니다. 끊임없이 고난이 따르지만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충분히 견딜만큼의 고난이며, 정금 같은 믿음으로 연단하시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만이 참 주인이시며 시작과 끝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복된 존재가 될 것이므로, 죽음의 자리에 이른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면서 견뎌내라. 그리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약속대로 생명의 관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