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서머나는 일곱 교회가 있던 도시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도시다. 무역항이면서 아름다운 해안으로 인해 경관이 뛰어나고 기후까지 청명하여 즐겨 찾는 휴양지라는 사실이 큰 몫을 한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윤택했으나 도덕적 타락과 향락에 도취된 환락의 도시였던 탓에, 육신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음란하여 우상숭배가 만연했다. 당시, 서머나교회의 감독인 폴리갑의 인격을 흠모한 로마인들이 그를 살리려고, 단 한번만 거짓으로라도 배교하는 척하라고 회유했으나 전혀 응하지 않았다. 평생의 주님을 부인하고 안락한 서머나를 선택할 수는 없었기에, 86세에 기꺼이 화형당했다. 서머나의 세속적인 부요함에 대비되는 폴리갑의 환난과 궁핍(=순교)은, 서머나교회를 향한 주님의 평가를 시사하고 있다
1.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환난은, 큰 돌덩어리를 사람위에 올려놓고 짓눌러 고통 받으며 서서히 죽게 하는 고문에서 유래한 단어다. 서머나교회가 겪고 있는 환난의 구체적인 실체는 궁핍이다. 상대적으로 생활수준이 낮은 정도가 아니다. 극심하게 가난한 상태다. 생활은 차치하고 심각하게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원인제공자는 ‘자칭 유대인들’이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는) 유대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용인받은 소수의 종교 중 하나였다. 그래서 유대교의 구심점인 회당을 곳곳마다 많이 세우며 교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서머나교회는 주로 그 유대교의 회당으로 찾아가 복음을 전하며 유대교인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개종하는 이가 늘어나자, 대규모의 집단거주자였던 유대인들이 로마의 관리들과 결탁하여 기독교인을 참소하고 고발하여 핍박했다. 유대인의 공동체에서 축출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킴으로써 삶의 터전을 잃게 했다. 재산을 몰수하고 투옥했으며 심지어는 순교자 폴리갑처럼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
2.주님께서는, 서머나교회가 당하는 이러한 환난과 궁핍을 아신다고 하셨다.
이와 더불어, 혈통을 근거로 자칭하여 유대인이라는 자들이,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신 신분과 사역을 부정하고 폄훼하며 저지르는 비방도 아신다고 하셨다. 성도가 직면하는 환란과 역경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하는 사실은,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된다. 모든 것의 처음과 마지막의 주관자이신 주님께서, 환난과 궁핍의 궁극인 죽음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부활하신 능력으로 ‘책임지신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책임지실 주님께서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다’라고도 하셨다. 직장과 재산을 빼앗기고, 본인이나 친인척이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했으며, 당장의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상황인데, ‘실상은 부요한 자’라니? 단순한 위로와 격려일까? 아니다. 진정한 부요함이 맞다. 믿음의 사람들이 환난과 궁핍에 직면하게 되는 이유와 그에 따라 대처하는 삶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3.믿음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 위해, 애굽에서의 지위와 특권을 버렸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위해 고난과 수모의 길을 걸었다(히11:24-26) 이유없이 당하는 재난이나 불이익이 아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기위해 자초한 결과다. 서머나교회가 외견상, 유대교와 로마의 권력에 의해 핍박을 받은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결단한 신앙적 의지의 결과인 것과 같다. 주님도 그랬다.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인간이 되는 궁핍함과 치욕의 십자가를 지는 환난을 기꺼이 받아들이셨다(빌2:5-8) 그 길이 진정으로 존귀하고 부요케 되는 비결임을 아셨기 때문이다(빌2:9-11) 이것을 알았던 바울도 그렇게 살았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자신을 가장 존귀하고 부요하게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빌3:7-11) 구체적으로는 부활의 참 생명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유력한 배경과 보장된 미래를 배설물로 여기며 미련없이 버렸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사탄에게 시험을 당하실 때, 유혹받았던 속성을 지닌 것들이다. 생존을 위한 양식과 명예, 존귀함의 모든 것들을 버렸다.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자초하는 환난과 궁핍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부요한 자인지를 나타내는 시금석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내몰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반드시 세상과 충돌하게 된다. 피해나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려 세상과의 충돌과 휘둘림을 회피하는 것은 참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궁핍해야 할 경우도 있다. 궁상을 떨라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의 것으로 부요해지려는 시도나 의지를, 철저하게 버려야 함을 뜻한다.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편에 서고 세상에는 등을 돌리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4.(맺는 말)
믿음의 길을 걸으면서 ‘왜 나만 힘들고 궁핍할까?’라며 탄식한 적은 없는가? 어쩌면 환난이나 궁핍없이 화려하게만 보일지라도 각자가 감당해야할 십자가(=환난과 궁핍)가 있음을 기억하라(요21:21-22)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그 십자가를 지고 환난과 궁핍을 회피하지 않아야, 성령을 통해 세상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상속자다(롬8:14-17) 그리스도가 받은 그 영광스러움을 함께 받는 상속자다.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임에 대한 증인이 되어주신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이요 부요함이다. 이 영광을 함께 받기위하여 고난(=환난과 궁핍)에도 동참해야 한다.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과 궁핍은 하나님의 자녀된 영광스러움의 증거임을 기억하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존귀함에 대한 각자의 책임과 무게를 늘 기억하며, 환난과 궁핍을 감당하자.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화로움과 존귀함과 부요함을 맛보고 누리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