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두아디라교회는 사랑의 수고와 믿음의 역사, 섬김과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좋은 교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세벨의 이단사설을 용납했다. 영과 육으로 행음하며 우상숭배에 동참했기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자신들의 안위와 육체적인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탓이다. 에베소교회와 달리, 말씀에 맺혀지는 열매에 근거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일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땅의 것에 집착함으로써 영적인 사명을 등한히 하여 교회와 주님의 신부인 성도로서의 순결을 상실했다. 본문은 이렇게 된 두아디라교회에 대한 주님의 처방이다.
1-1.첫 번째 처방은,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부여하신 것이다(:21)
교회를 무너뜨리고 파괴한 원흉인 이세벨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없음을 나타낸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죄도 다 용서하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세벨은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의지적으로’ 거부했다.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바르다는 영적인 교만에 빠졌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기에 주님께서 침상에 던진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질병에 걸려 병상에 눕게 되었음을 뜻한다. (베뢰아 이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질병의 원인이 하나님의 징계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질병에 걸렸다면 세상의 가치관과 주장으로, 교회공동체와 성전된 자신을 오염시켜 혼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도 개개인의 생각과 태도가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말씀을 통해, 지적해주실 때 회개해야 한다. 회개치 않으면 육신의 질병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성전인 것과 교회 공동체의 거룩함을 깨닫도록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마18:21-22)고 말씀하신 주님은 ‘무한대로’ 제한없이‘ 기회를 허락하신다. 그런데, 용서받도록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말씀을 주시지만, 말씀을 깨닫지 못하거나 거부할 경우, 때로는 회초리를 드시기도 한다. 이렇게 해도 회개치 않으면 큰 환란으로 던지신다. 의지적으로 거부하는 이세벨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이상 누릴 수 없는 죽음으로 몰아넣으신다. 우리는 손해가 예상되거나 명예가 손상될 것 같은 경우, 이세벨의 주장에 동조하여 너무나 쉽게 세상과 타협하려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공동체의 거룩함이 침해와 도전을 받아 훼손당하는 것을 결코 묵과하지 않으신다.
1-2.그렇지만, 하나님은 위협과 협박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교회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 이세벨조차도 돌이키게 하시려고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크심과 은혜로우심을 생각해보라! 이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감당할 수 없는 우리 스스로의 연약함과 왜소함을 깨달으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맘으로 높
이고 경외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십자가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인지를 다시 생각하며, 하나님의 크심과 은혜로움에 대한 경외감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하나님은 크신 사랑의 용광로로 우리를 온전히 녹여서 그 사랑 안에 머물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면서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분이시다. 비록 우리가 잠시, 이세벨의 주장을 따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을 용서하기 위해 기다리시며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1-3.그렇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
주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영육의 음행을 합리화하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버려야 한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만을 추구했던 삶을 회개해야 한다. 주님을 따를 때, 직면하는 고통과 손해를 회피하기 위해 타협하는 삶을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용서하신다(요일1:9) 회개는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삶을 맞추어가는 것이다. 주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해야만 가능하다.
2.주님은, 이세벨의 궤변을 거부하고 동조하지 않은 이에게도 처방을 주셨다(:24-25)
주님은, (진리를 왜곡한 이세벨을 통한) 사탄의 흉계를 의지적으로 거부한 이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단지, 이세벨의 꼬임에 물들지 않은 신부로서의 순결함과, 믿음과 사랑과 섬김과 인내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셨다. 서머나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수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세속주의가 교회를 흔들고 유혹하지만, 이미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굳게 붙들고, 그 안에서 신실하게 믿음을 유지하면서, 교회의 순결함을 지켜내고, 거룩한 신부로서의 삶을 살아내라는 뜻이다. 세상의 도전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삶을 살면서, 직면해야하는 유혹과 손해들을 감내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이기는 것이다.
3.(맺는 말)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의 궤변에 빠져 세속에 물들게 되었을 때,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오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의지적으로 회개하지 않는 자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때로는 질병과 환란으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단절되게 하시기까지 징계하여 기다리시면서 돌이키도록 하신다. 혹시, 부지불식간에 이세벨의 주장에 동조했던 사실이 깨달아지면 회개하고 돌이키길 바란다.
잘못된 것을 분명하게 분별하면서 인내하며 사랑의 수고와 섬김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왔던 이들은 늘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주님오실 때까지 끝까지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하여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을 받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