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너희는 소금이다(마5:13-16) 전성욱 목사님

(도입)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이 말씀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점검해봤으면 한다.
1.먼저, 소금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13) ①소금은 인체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설탕이나 밀가루의 섭취를 중단하면, 건강에 청신호가 켜지지만, 소금을 끊으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②또한,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는 물질이다. 고대사회에서는 희소해서 고가에 거래되었다. 노동자의 월급을 소금으로 지급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오스트리아와 독일간의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얼핏 보기엔 하얀 가루처럼, 우리가 보잘것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정말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③이와 더불어서, 부패를 방지하거나 지연시키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즉, 우리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2.그런데,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경에서는 소금을 어떤 의도와 의미로 사용했을까? ①특정 의식을 행할 때, 씻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소금을 사용했다(출30:35) 세척하고 살균하는 역할과 거룩하게 함으로써, 이 세상의 부패를 늦추거나 방지할 수 있었다. ②그렇지만, 이 땅의 부정한 대상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와 저주를 상징한다(신29:23) 소금이 뿌려진 땅은, 어떤 생물도 자랄 수 없는 황무지가 되기 때문이다. ③이뿐만 아니라, 소금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변함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로도 쓰였다(레2:13, 민18:19) 예수님께서는, 이상에서 살펴본 구약성경에서의 소금의 의도와 의미를 가진 ‘말씀의 토대위에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3.하나님은 이 땅을 심판하시려고 진노와 저주의 상징인 소금(= 예수님)을 뿌리셨다. 이러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시려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이 땅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으셨다. 우리를 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를, 이 세상을 저주하고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뜻이 아니다. 소금인 우리도 (십자가를 지신)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위해, 여전히 죄악에 빠져 있는 자들을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감당하라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연유로, 산상수훈의 팔복의 내용들을 정리한, 하나님 나라백성의 정체성을 ‘소금’이라는 단어로 함축하셨다. 즉, 세상의 소금이 되는 삶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이며, 세상의 가치관과 판이한 팔복의 내용을 참된 복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4.그렇다면, 이제, 본문에만 한정해서, 소금에 대한 핵심적인 의미를 살펴보자(:13) 본문은 ‘맛’이라고 말하고 있다. 짠 맛을 내야한다( 막9:50, 눅14:34)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 맛을 내는 역할을 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죄악된 이 땅은 살 맛 나는 세상이 아니다. 쓴맛만 있기에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땅에 뿌려져서 맛을 내야 한다. 우리가 보냄을 받은 삶의 자리인, 교회공동체와 가정, 학교와 직장, 이웃이나 지인과의 관계에서, ‘소금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살맛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되새겨야 할 사실이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다. ‘(이미) 소금이다’라고 단정하셨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참으로, 놀랍고 영광스런 이 말씀을 기억하며 소금으로 살고자하는 ‘거/룩/한/ 갈/망/으/로/’ 주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삶이되길 바란다.
5.그러면, 이 땅에서 소금의 역할, 즉, 소금의 맛을 어떻게 낼 수 있을까? 예수님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소금으로 뿌려지셨다. 하지만, 뿌려지신 그대로였더라면 아무런 맛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녹아서 형체가 없어져야 한다. 주님께서는 소금의 역할인 맛을 내기 위해, 이 땅에 뿌려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라신다. 그래서,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선언하셨다. 바닷물은 미량의 소금으로도 충분히 짠 맛을 느끼게 한다. 초대교회 성도는, 지극히 미미하고 연약한 존재였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내어주는 사랑으로 섬겼다. 소금과 같이 녹아져서 마침내는 로마제국 전체가 복음화되도록 했다. 한국교회의 믿음의 선진들도 그랬다. 소금으로 녹았다.
6.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가? 녹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주인공의 위치와 높은 자리만 탐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다. 이 때문에, 교회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금으로 녹아 희생하는 길이 막혔다. 세상이 하는 것처럼, 오히려 더 녹지 않는 소금 덩어리로 뭉쳐서, 세력을 모으고 힘을 과시하면서, 권력을 쟁취하여 뜻한 바를 성취하고자 할뿐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서 떨어져서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12:24) 소금인 우리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녹아져서, 맛을 내야 한다. 위그노 마리뒤랑이나, 바보의사 안수현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하며, 주님을 따라 죽음으로써, 이 땅을 위한 복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
7.(맺는 말)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가치를 소금에 두기를 바란다. 아마도, 우리들 대부분은, 엄청난 성취를 이루는 삶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녹아진다면, 진정 아름답고 영광스런 인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주님께서, 우리를 삶의 자리에서 소금으로 뿌리실 때, 예수님처럼 기쁘게 녹아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사랑해주고, 위로해주고, 용서해주면서, 작은 양보와 나눔을 통해’, 맛을 내는 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