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44. 해를 옷 입은 여자(계12:1-6)

(도입) 지난 시간에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왕노릇 하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해 함께 묵상했다. 오늘은, 그 첫걸음인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살펴보길 원한다.
1.본문은, ‘하늘에 큰 이적이 보였다’라는 말로 시작한다(:1)
‘큰 이적’은,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표적’인데, 해를 옷 입고, 달을 밟고 서 있는 여자가, 머리에 열두 별의 관을 쓴 장면으로 시작한다. 로마 카톨릭의 일부에서는 이 여자를,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붉은 용은 헤롯(대왕), 용이 삼키고자 했던 아이를 예수님이라 하고, 여자가 피신한 광야를 애굽’이라는 식으로 끼워 맞추면 그럴듯하게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본문과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애굽으로 피신했다(12:5-6, 마2:14-15) 또한, 여자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의 어머니, 즉, ‘교회의 모체’로 지칭하고 있다(:17) 구약성경에도 여인은, 예루살렘, 시온,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해보면, 이 여자는 구약과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의 증거를 가진 ‘교회’다.
2.이 여인의 모습은,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일깨워준다.
교회는,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해를, 옷으로 입은 ①영광스런 존재로서, 달이 상징하는 이 땅을 밟고 서서 ②다스리는 능력과 권세(11:5-6)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전투를 마치고 ③결국에는 승리하여 면류관을 받을 존재임을 시사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태초부터’ 존귀하고 영광스러우며, 권세와 능력이 있는 공동체로 예정하셨고, 이에 속한 모든 이들이 상을 받는 존재가 되도록 계획하셨다. 궁극에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나타날 존재요, 이 땅에 임할 새 예루살렘이다. 이 여인이 해산할 때가 되자,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는다(:2) 태어날 이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5, 시2:7-9) 철장은 ‘정복하여 굴복시키는 무기’가 아니다. ‘강력한 권세’를 상징한다. 교회의 모체인, 이 여인으로부터 하나님의 권세와 공의로 다스릴 메시야가 오신다는 뜻이다. 해산의 고통은, 교회를 통해 이루어가는 구원의 과정을 말한다. 교회가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품고 기도하며 인내하는 시간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지만, 그 결과는 비할 데 없는 기쁨과 감격이 된다(요16:19-21)
3.붉은 용은,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고, 이 과정을 노려보고 있었다(:4)
붉은 용은, 주권을 상징하는 머리 일곱에, 일곱 왕관을 썼고, 권세를 나타내는 뿔을 열 개 달고 있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주권과, 왕되심과, 권세’를 모방하는 속임수를 부리는 거짓된 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에게도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심판이나 지배를 할 수는 없다. 붉은 용은 거짓으로 현혹시키는 사탄이다(9:9) 끊임없이 교회를 훼파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다. 붉은 용은,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 했지만, 태어난 아기는 ‘하나님에 의해’ 곧바로 하늘로 올려졌다. 사탄이 교회를 파멸시키려 하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막으심으로써, 사탄의 모든 궤계를 무너뜨리신다는 뜻이다.
4.여자는 천이백육십일 동안 양육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야로 피신한다(:6)
천이백육십일이, 당시의, 사도 요한에게는 미래의 시점이지만,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현재까지와, 재림하실 미래의 특정 시점까지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은, 광야에서 삶과 같아야 한다. 광야는,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께만 의존해야하고,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의 은혜를 분명하게 확인하며, 날마다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하나님을 더 분명히 알아가며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도록 성장하기에 가장 합당한 환경이다. 그래서, (교회의 모체인)여자를 ‘예비하신 광야’로 불러, 넉넉히 이기고 넉넉히 누리도록 해주셨다(신29:5)
5.이러한 예비하심을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을 경험하게 될까?(시23:1-6)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상황에서도,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간증했다. 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고백했다. 그런데, 정작, 다윗에게 가장 깊고 두려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밧세바로 인해 범죄한 다윗 자신이다. 이 때문에 말할 수 없이 통곡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자신이 놓았던 올무였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셔서, 깊은 수렁에서 건져주셨다.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심으로써, 결국에는 승리하여 잔치 상을 받게 해주신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광야는,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불행이 아님을 기억하라. 이 광야에서 다윗처럼, 여호와께서 목자가 되심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복된 삶이되길 바란다. 이것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성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6.(맺는 말)
하나님의 나라는, 외견상 연약한 여인의 모습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이 여인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권세가 있다. 하나님의 상급에 참여하게 되는 교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교회에는 끊임없이 사탄의 도전이 있지만, 하나님은 작정하신 가운데, 이 구원을 완성시키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 과정에서, 우리를 광야로 보내어 ‘자라게 하시고 준비하게 하셔서’, 이 모든 도전을 능히 감당케 해주신다(롬8:31) 이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이심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