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13. 감추었던 만나와 흰돌을 받을 자(계2:16-17)

(도입) 버가모교회의 극히 일부지만, 발람의 계략에 의해 교회에 침투한 세상의 가치관이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로서의 모습을 잃게 했다. 그래서, 본문 초두에, ‘(교회전체가) 회개하라(:16)’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내용을 나누기에 앞서, 오늘은 회개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나눠보자. 회개는 과연 무엇인가?(마21:28-31)

1.회개는, 말씀에 의해 조명 받은‘뉘우침’에서부터 시작한다(마21:30)

뉘우침의 바른 기준이 말씀이기 때문이다(知, concept) 말씀이 있어야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후회와 구별되는)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다.  회개는, 말씀의 조명에 의해, 자신이 옳지 않다고 깨닫고 인정하는 뉘우침으로부터 시작한다(情, attitude) 즉, 회개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에 일치하도록 맞추기 위해 자신의 의사를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씀에 비춰 교정한 생각에, 행하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意, behavior)
회개의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성령의 부르심에 의한 처음의 회개는, 죄의 종이었던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重生) 한다. 이후의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받은 은혜를 연약함 때문에 상실하게 되었을 때, 말씀을 통해 뉘우침으로써 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부요함과 은혜의 풍성함을 회복하게 하는 방편이 된다.

2.그렇다면, 회개의 전제가 되는, 죄는 어디로부터 연유되었나?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할 열매를 맺는 나무를 두신 하나님의 탓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에덴동산의 중앙에 두신 이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다. 유한한 인간은 결단코 하나님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시청각 교재로서의) 역할에 그 존재의미가 있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한 유혹을 받았을 때, 자유의지로 거부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처럼 선악의 판단과 기준이 되는 존재가 되려는 자신의 허황된 욕심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죄는 고의성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향하는 특성이 있다. 가룟유다도 마찬가지다. 사탄이 예수님을 팔아 죽음으로 몰아갈 마음을 넣어주었을 때, 그는 거부하지 않고, 적극 동조하면서, 의지를 가지고 행했다(롬1:28)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시라는 하나님이, 죄를 지었다는 이유를 들어 생각하기도 끔찍한 지옥으로, 사람들을 떨어뜨릴 수 있냐고 어리석게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지옥으로 보내시지 않았다. 스스로가 자유의지에 의해 적극적으로 죄를 선택했다. 그 결과로 영원한 죽음(=하나님과의 분리)을 맞아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오히려, 당연히 지옥으로 가게 된 사람들을 위해 사랑을 베푸셨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 기쁨을 누리도록 해주셨다.

3.그렇다면, 과연, 회개의 대상은 누구일까?

본문에서의 회개하라는 말씀의 대상은 버가모교회 전체다. 발람의 교훈에 빠진 자만이 아니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암시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발람의 계략에 빠져 교회를 오염시키는 자는 극히 일부지만, 교회는 권속이요, 함께 부름 받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몸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므로 함께 공동체의 허물과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해당 대상자를 지목하여 탓하고 배척하며 낙인을 찍는 일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 허물과 책임을 그에게만 전가하지 말라. 교회는, 함께 끌어안고, 같이 아파하면서, 위하여 기도해야하는 공동체다. 그 허물과 죄를 내가 범한 것으로 수용하며 함께 회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교회의 직분자는 공동체의 연약함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먼저 져야한다는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점에선 가정에서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책임에 대한 두려움을 늘 기억해야 한다. 신실하게 충성하도록 준비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항상 기도해야 한다. 주의 일을 감당하거나, 참된 회개와 회복을 얻기 위해서는 말씀에 바로서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4.주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속히 임하셔서 입의 검으로 싸우시겠다고 하신다.

주님께서 싸우시려는 대상은 회개하지 않는 자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뿐만 아니라, 교회에 출석하지만 믿음의 근원이 되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어서 중생하지 못한 자다. 검의 심판을 받게 된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얍복강 나루터에서의 야곱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으로 버티며, 말씀 앞에 굴복하지 않는 자다. 주님의 싸움의 방식은, 말씀의 검으로 환부를 도려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격에 이르도록 빚고 다듬어 가신다. 그래서 그 과정이 힘들고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열심을 다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면 버티지 말고 순종하라.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이 거기에 있다.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회개를 촉구할 이유가 없다.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호6:1)

5.(맺는 말)

정말 신실하지만, 극히 일부라도 발람의 계략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면 주님은, 회복하길 원하신다. 주님 앞에 나오면 치유시켜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회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부요함과 풍성함을 누리게 하는 은혜의 방편과 초대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복을 온전하게 누리는 길로 인도하신다. 죄와 허물이 들춰지는 것이 달갑지는 않겠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외면하며 버티거나 변명하지 말라. 영적 육적 음행의 자리를 찾거나 생각했던 것에 대해, 말씀이 지적하면 속히 회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