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요한계시록 강해 37.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계8:1-5)

(도입) 어린양이 일곱 번째의 인(봉)을 열자, 하늘이 반시간쯤 고요해졌다. 혼비백산케 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고,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웅장한 찬양이 있은 후다. 반시간은 지극히 짧으나,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완성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긴장과 기대가 절정으로 치닫는, 폭풍전야와 같은 정적의 순간이다.
1.그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항상 준비된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다(:2)
일곱 천사가 ‘항상 섬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일하심의 현재성을 나타낸다. 천사가 나팔을 받았는데, 나팔은, ①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전쟁과 심판을 의미하는 경고의 상징이다.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심과, 승리를 상징한다. ②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강림(=재림)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을 의미한다.
2.그런데, 갑자기 나팔에 대한 언급을 멈추고, 새로운 장면으로 시선을 옮기게 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서술 형태는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다. 인(봉)과 관련한 묘사로부터 나팔의 재앙이 이어지다가 대접의 재앙으로, 넘어가는 과정들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의 모순을 드러낸다.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반복되면서 그 설명과 묘사가 점진적으로 보강되며 확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6:12-13 vs 8:12) 요셉이 해석해준 바로의 꿈이 이와 같은 경우다(창41:1-7) 표현만 달리한, 동일한 사실을 가리킨다. 시간적으로 중첩되는, 인(봉)과 나팔과 대접의 심판도 서로 별개의 재앙이 아니라는 뜻이다. 심판의 의미를 보다 더 분명하게 각인시켜주시기 위한 반복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목적은 자기 백성을 향한 승리를 위함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멸망당함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점층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이상에서 살펴봤듯이, 반복해서 서술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신다’ 는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와 함께, ‘하나님께서 행하실 심판의 의미’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드러내시고자 함이다.
3.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제단 곁의 금향로에 받은 향에 대해 생각해보자(8:3)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다(5:8) 그런데, 본문에는 그 향이 성도의 기도와 합해져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금 제단에 드려진다.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이 향의 중보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유일한 중보자시다. 성도의 기도가 향기가 될 수 있는 이유도,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의 결과다(롬5:8-11) 타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그들은 돌이나, 나무나, 특정 형상 앞에, 제단을 쌓고 여러 형태의 헌신과 정성을 드리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거래’의 형식을 취한다. 자신이, 자기 기도의 응답의 이유와 근거가 된다. 하지만, 믿음 안에 있는 우리는 다르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응답은 예수그리스도의 중보를 토대로 해야만 가능하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과 함께 드리는 기도일 때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향기가 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현된 결정체다. 이와 함께,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과 믿음을 바탕으로 한 기도일 때,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기도가 된다.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과 우리의 삶 가운데서 실행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한다(요14:14) 이와 더불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성도에게 그 어떤 배경보다 더 든든하고 확실한 버팀목이다.
4.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이유는,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기도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일하시지 않는다고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하나님을, 우리가 기도로 조정할 수 있는 꼭두각시인양 전락시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궁극적 이유는, 에덴에서 누렸던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함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 죄로 인해 은혜의 누림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은, 은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여 은혜의 부요함을 회복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우리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죄의 뿌리와 옛사람의 속성들과, 죄로 오염된 모든 상황과 환경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고 심판하여, 완전히 소멸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 은혜 안에서 간구한 것을 내게 허락해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기도의 응답이 되고, 하나님께서 종말에 심판하시는 이유가 된다. 이를 위해 금향로가 불이 되어서 쏟아진다(말3:2-4) 하나님의 심판과 연단은, 우리를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응답의 목적은 이를 위함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더 많이 소유하고 얻는 것을 기대하는 기도는 이제 그만하길 바란다.
5.(맺는 말)
하나님의 심판은 시간의 순서가 아니다. 내용과 상황이 더 분명해지도록 점진적인 반복을 통해, 그 의미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드러내신다. 이 모든 일은 성도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진행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신 것들을 회복시키시고 누리도록 하기 위한 심판이요 종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주심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와 소망으로 심판과 종말을 대해야 한다.